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 (문단 편집) == 피해자와 피의자 == [[파일:attachment/d0131364_512c88b162c42.jpg]] 피해자 서정철(徐廷哲 1921.5.13~1959.2.18) 육군 [[준장]]은 1921년 5월 13일 [[경상남도]] [[통영시|통영군]]에서 아버지 서병두(徐炳斗, 1899~1961)[* 창씨명은 오오야마 헤이토(大山炳斗), 족보명은 서병두(徐丙斗).]와 어머니 [[밀양 박씨]](1901~1929) 박태길(朴泰吉)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. [[이승만]] 정권 시절 [[법무부장관|대한민국 법무부 장관]]을 지낸 [[서상환]][* 조부 서상관(徐相灌, 1874~1923)의 첫째 남동생이다.]이 그의 종조부이며 아버지 서병두는 용남공립보통학교와 [[동래고등학교|동래고등보통학교]], [[서울대학교/학부/법과대학|경성법학전문학교]]를 졸업하고 [[일제강점기]]에 통영읍회 의원, 경찰서 고문 등을 역임했다. [[서정화(1933)|서정화]] 전 [[내무부장관]]은 그의 둘째 남동생이다. 서정철은 [[일본]] [[주오대학]] 재학 중 학병으로 징병된 적이 있으며 해방 후 국방경비대에 입대했고 [[육군사관학교]]를 2기로 졸업한 뒤 [[제3보병사단]] [[부사단장]], [[육군기계화학교|육군기갑학교]] 교장,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 작전과장 등을 거쳐 [[미 육군]] 참모대학 유학 후 1956년 제28보병사단장에 임명된 인물이었다. 성격이 매우 급하고 거칠어서 수틀리는 일이 있으면 바로 부하들의 [[쪼인트|정강이를 군화발로 찬다든가]] [[철모]] 쓴 머리를 지휘봉으로 내려칠 만큼 과격한 부분도 많기는 했지만 부하를 마구잡이로 학대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머리가 좋고 [[영어]]에 능한 군인이었다. 평소 부하들에게 "현대 장교들은 [[운전]], [[영어]], [[타자]]에 능해야 한다."고 주장하면서 장교들을 시험할 정도로 그 시대 군인 중에서는 지식을 강조했다. '''[[사병 출신 장성|장군이 된 이등병]]'''으로 유명한 [[최갑석]] 장군([[현지임관]], 1983년 [[소장(계급)|소장]] 전역)이 (구)제6군단 포병 [[대대장]]([[소령]]) 시절 제28보병사단에 배속된 일이 있는데 사단장 서 장군이 대대를 방문해서 최갑석 소령에게 운전할 줄 아느냐고 묻자 최 소령은 관측장교([[소위]]) 시절부터 운전을 해 왔다고 답했다. 그러자 서 장군은 최 소령이 운전하는 [[지프]]에 타고 포병 훈련장을 돌게 했는데 운행 내내 서 장군은 보조석에서 코까지 골며 단잠을 잤다고 한다. 나중에 사단 참모회의 때 서 장군은 "최갑석 대대장은 운전을 잘 한다. 타고 가는 내내 편하게 잘 수 있을 정도였다."고 최 소령을 대놓고 칭찬하기도 했다. 즉, 까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에 차기만 하면 그만큼 보상을 하는 일면도 있었다. [[파일:attachment/d0131364_512c88bddae88.jpg]] 상관인 서정철 장군을 살해한 6297부대 1대대 대대장 정구헌(鄭究憲) [[중령]]은 1925년 [[평안남도]] [[대동군]] 출신으로 육사 8기생으로 군문에 들어선 뒤 미 [[육군보병학교]]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장래가 유망한 장교였다. 독실한 [[개신교]] 신자로 사생활이 깨끗하고 정의감 넘치는 수재였지만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자신의 생각과 대치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의견을 깔아뭉개거나 상대방을 얕보는 일이 잦아서 교우관계가 그리 원만치 않았다. 이 사건도 어찌보면 정 중령의 지나치게 높은 자부심이 빚어낸 참사였다고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